[완두] 일상을 기쁨으로 만드는 방법
『쓰레기통 요정』(안녕달)을 읽고 나서 그림그리기에 관심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이 올려둔 그림을 보고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책에 있는 그림을 보고 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림책 표지를 그리는 게 재밌을 것 같았다. 문을 일찍 닫는 어린이 자료실이었고, 퇴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검색할 시간도 없이 무작정 책장으로 갔다. 나는 거기서 ‘완두’를 만났다.
민트색의 표지와 동글동글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그림체가 맘에 들었다. 누워서 책을 보고 있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손을 대지 않고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다니. 심지어 노란색 표지의 책이라니! 사고 싶은 물건 목록에 누워서 책을 보는 독서대를 넣어둔 내게는 딱이었다. 우리나라 작가인가 싶었는데, 빌려와서 보니 외국 작가였다. 유럽인가 싶었는데 맞았다.
글과 그림 작가는 다른 사람이었다. 글은 다비드 칼리, 그림은 세바스티앙 무랭이었다. 다비드 칼리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살며 바오밥 상, 볼로냐 상까지 받은 유명한 글 작가였다. 세바스티앙 무랭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경제학을 공부하고 이후에 그래픽아트 학교에서 일러스터 작업을 시작했다. 어린이 책과 잡지 삽화 등 다양한 그림을 그리고, 프랑스에서 상도 받았다. 둘 다 쟁쟁한 이들이었다.
짧지만 알찬 완두의 이야기가 맘에 들었다. 완두는 마치 나를 보는 것도 같았다. 너무 작게 태어나 성냥갑에서 잠을 자야 했던 완두였다. 그런 완두는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불평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해나간다. 하지만 모든 게 규격화된 학교에 완두는 어울리지 않았다. 완두는 적응을 잘 못했다. 완두의 선생님 또한 완두의 진로를 걱정했다.
선생님처럼 나도 완두가 걱정됐다. 하지만 그림체가 너무 예뻐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화가처럼 옆으로 삐죽 나온 검은 머리에 동그랗고 긴 얼굴, 주황색 볼터치를 한 것처럼 발그레한 얼굴빛이 인상적이었다. 팔, 다리는 짧았지만 완두는 그 자체로 너무 귀여웠다. 자신의 작은 몸에 맞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형의 신발을 신고 블록을 쌓아 절벽처럼 오르고, 자신보다 훨씬 긴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완두는 작았지만 완두는 작지 않았다. 완두는 몸만 작았을 뿐, 마음도 정신도 아주 큰 아이였다.
완두가 뭐가 될지 정말 궁금했다. 뒷부분에서 완두는 자신에게 맞는 일을 잘 찾아서 하고 있었다. 부러웠다. 기쁘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내게 맞는 일이 뭔지 몰라 헤매고 있는데, 완두는 그러지 않았다. 완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을 찾아 매일의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작은 그에게 딱 맞는 일은 ‘우표 그리기’였다. 그는 매일 아침 애완동물인 무당벌레와 함께 신발장에 놓인 그의 직장으로 출근을 했다.
나도 완두처럼 나의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나도 완두처럼 내게 맞는 일을 위해 매일매일 출근할 수 있을까. 그렇게 기쁘게 즐겁게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나의 전공은 책이고, 글쓰기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그거였는데 나는 과연 그 일을 계속해도 괜찮을까. 그 일이 나에게 나의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완두와 관련된 그림을 서너 장이나 그리며 완두에 나온 이미지와 배경을 익혔다. 완두의 글에 나오지 않은 디테일한 부분들이 그림에 나와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림책을 통해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책을 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간결한 글에 개성 있게 표현된 그림책이 매력있다. 그게 꼭 직업이 되지는 않더라도 나의 취미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완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그 일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